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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의 현상들로부터 바라버는 추억 혹은 시간에 관하여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시각예술에 있어  ‘본다’ 라는 행위는 이 예술 영역을 여타 영역과 구분하는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작업에 따라서는 이것 자체가 작업의 핵심적 내용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본다’ 라는 행위를 어떻게 자각하고 있는가는 작가마다의 작업을 다르게 읽도록 만드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민희 작가의 경우에도 작가가 ‘본다’라는 행위를 어떻게 자각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 역시 ‘본다’ 라는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민희의 작가의 작업은  ‘본다’ 라는 행위를 살펴보는 것과 함께 보는 보는 행위의 주체인 작가의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장애를 지닌 몸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것들과 몸으로 감각되는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대로 인지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몸에 마비가 오는 경우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매우 흐리게 느껴졌고, 다른 감각들 역시 함께 둔해졌으며, 심지어는 시간마저 점차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이러한 경험은 세계를 바라보고 감각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고, 그가 살고 있는 세계에 속한 사물들을 바라본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다양한 사유와 상상을 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길, 36.5도를 보다’ 를 주제로 한 작가의 지난번 전시에서는 몸의 체온이 오르내릴 때 그의 감각과 의식이 흐려지는 과정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반영하는 시각 및 그와 관련된 감각에 대한 사진작업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몸의 감각뿐만 아니라 점차 느려지고 있는 듯한 시간, 혹은 멈춰져 있는 듯한 시간에 대한 작업을 보여주게 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내 시간의 혼돈과 헛된 멋’ 이라는 언급과 함께 그로부터의 ‘집착이 아닌 시간의 추억과 흔적들을 본다’ 라고 언급을 한 바 있다. 작가는 또한 이번 전시의 주제를  ‘날것의 멋’ 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언급들을 살펴보면 작가에게 있어서 ‘시간’ 이란 일정한 흐름이 아니며, 고정된 진리도 아니고, 영원한 법칙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시간이란 혼돈이 될 수도 있으며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그의 작업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민희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몰입되거나 매몰되지 않고,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세계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것을 경험할 때 몸에서 일어나는 것과 몸에 남는 것에 대해 기록하고자 하고 있다. 작가는 작업을 해오는 가운데 사물 그 자체를 단순히 바라보는 것 대신에 사물과 자신의 사이에서 작용하는 감각이나 시간과 같은  ‘본다’ 는 행위의 지평이자 배경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현실 속에서 시간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들이란 마치 꾸미거나 만들어낸 것처럼 세계 속에 드러나게 된  ‘현상’ 일 뿐이고,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 역시 그것의 연쇄일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세계와 그로부터 경험하는 것들은 작가의 견해처럼 집착할 대상이 아니라 추억하고 바라볼 대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그러한 태도로 눈 앞의 현실을, 그리고 기억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그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기억의 이미지이자 현실 속 이미지로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작가에게 있어서는 이 이미지들이 눈앞에 있는 것들이면서 또한 기억에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살아있는 날것’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언제 날아가 버릴지 모르는  ‘멋’ 부린 아름다운 ‘현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시간의 흔적으로 작업 안에 이미지로 담아내서 그것을 그의 경험 안으로 다시 가져오고자 한다. 작가는 그 스스로 이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시간 여행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듯 작업 속에 그의 기억을 불러내고 또 이를 대상화하여 다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실 속 사물들로부터 추출된 것이므로 현실과 꿈이 섞여 있는 듯이 모호하거나 의문스런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마치 낡고 멈춰버린 시계가 오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수 없고 시간을 멈추게 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시계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시간에 연결시키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이민희 작가가 선택한 사물의 이미지들은 그가 과거 보았던 사물들과 현재 보고있는 사물들을 연결시키는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시각을 이어주는 시간이라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여러 파편들에 불과한 이 연결고리에는 감각 주체이자 행위 주체인 작가의 신체와 정신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세계를  ‘본다’ 라는 행위가 갖는 작가적 의미와 해석이 함께 담겨 있을 것이므로 관객에게 있어서는 그의 작업을 추억 혹은 기억이라 지칭할 수 있는 바로 이 시간이 이미지로 드러난 현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시선을 그 이미지의 표피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는 행위를 구성하는 내부, 외부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사유하기 시작한다면 이민희 작가로부터 전해지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타자의 시각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날 것의 멋 

​작가노트

 오후 4시,

물어가는 노을 사이로 비치는 마을. 이 시간은 하루 일정을 끝내고 몸이 깨어나는 시간.

산책을 하며 만난 어린 세발자전거. 빛을 가득 담은 필름이 상영이 된 듯, 어린 시절의 행복했덕 떠올리게 한다.

 이 풍경들은 비, 바람, 그리고 사람들의 흔적들로 빈티지한 시간의 멋이 있다. 그 시간의 건너편에 어른이 된 나는 벽에 핀 곰팡이과 자연의 흔적, 녹슨 철제문, 그 옛 것의 품위를 바라본다. 나는 살아온 시간에 기대어 살 곳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살아온 나의 흔적과 빛의 색으로 유년 시절과 현제의 시간을 오간다. 이 시간의 여행을 따뜻한 빛으로 프레임에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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